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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업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삼화당한약방 대표)"오늘도 후세에 빛이 되고자 불제자의 길을 걷고 있다._()_"
복덩이웅재 복덩이뉴스기자  |  bok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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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07  11:41:33  |  조회수 :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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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권성업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
(삼화당한약방 대표)
내가 탯줄을 메고
고고의 울음을 터트리며
‘사바세계’라는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은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 부처골(佛洞)이다.

부처골은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다.

마을의 북쪽은 부채모양의 둥근 산이 병풍을 두른 듯 서 있고, 좌우에는 그 산에서 뻗어 내린 지맥(支脈)이 힘차게 달려와 청룡과 백호가 되어 마을을 다정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어귀엔 개천이 굽이돌아 흘러서 낮에는 아낙의 빨래터요, 밤이면 더위를 달래던 욕탕이고, 겨울이면 소년들의 썰매장이니 옛사람들의 생활명당이라 할 만하다. 비록 세 살 때 이사를 했지만 나를 낳아준 땅이기에 지날 때마다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내가 성장한 제2의 고향은 칠성들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양지 바르고 살기 좋은 마을 갈읍리(葛邑里)다.

이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인생의 황금기라 할 중요한 시절을 보냈다. 광복의 크나큰 기쁨과 동족상잔의 뼈아픈 시련도 이 마을에서 맛보았고, 한때 이 정든 마을을 뒤로한 채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러 서당엘 다녔다. 당일 배운 것을 선생님 앞에서 암송해야만 합격이 되는데, 모르면 종아리에 회초리 세례를 받기 일쑤였다. 옆에 ‘동몽선습’을 먼저 배운 친구들이 암송 중에 막히면, 다음이 무어냐고 호랑이 스승님은 호통을 친다. 등 너머로 익힌 내가 눈치도 없이 옆에서 무어라고 코치를 하는 바람에 그를 더 야단 맞춘 일이 철부지 코흘리개 시절의 꿈의 한토막으로 아련히 되살아난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 광복을 맞이했다. 왜정(倭政)의 입맛에 길들여진 5, 6학년 정도의 철부지 학생들은 무엇을 좀 아는 양, 일본이 억울하게 졌다고 숙덜거렸다. 그날 밤이었다. 동리 사람 남녀노소가 모여 풍물을 치며 만세를 목 놓아 불렀고, 높은 하늘도 좁은 양 양팔을 휘두르며 한데 어우러져 춤을 췄다.

어린 나로서 영문도 모르고 맞은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학교 1학년 때 6.25라는 끔찍한 전쟁이 터졌다. 어제까지만해도 정다웠던 이웃이 하루아침에 원수로 변해 서로 죽이고 죽는 엄청난 사건들이 자행되었고 무고한 국민들이 가족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참상이 온 천지를 뒤덮었다. 전쟁이란 참으로 참혹하고 무서웠다. 하필이면 36년간 외세의 압박을 받았던 선량한 우리 동포가 시대가 낳은 가공할 불장난의 제물이 되다니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전쟁이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과 재산,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난폭자요 무법자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비도덕적 무자비한 범죄임을 뼈저리게 맛보았다.

이런 비참한 와중에도 세월은 무심히 흘러 고등학교 졸업이 일 년 남짓 다가왔다. 2학년 겨울방학에 들어서자 진학을 위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통수단이라야 20여리를 뛰는 듯 걷는 속보가 최선의 방법이었다. 밤샘공부로 체력은 달렸고, 생활환경은 열악했기에 영양보충이란 한 갓 꿈속의 일이요, 육식은 제사 때나 명절이라야 구경했다.

마침내 방학이 끝나고 등교가 시작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감기가 하루저녁에 급성기관지폐렴으로 돌변했다. 당시 사정으로 입원이란 극히 어려웠다. 약방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이를 악물고 내 몸에 주사하기 120여 회, 학업과 투병을 함께하는 고통의 날을 보냈다. 고3의 중요시기에 몇 개월 간 결석을 했으니 탄탄대로로 기약된 운명의 배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제 독학이라는 한 발로 걷기식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졸업 후 약 일 년 간 병약한 몸으로 집에서 재수의 꿈을 키우며 고민할 때, 할머니께서 조용히 물으시었다.

“애비도 없는 네가 만약 대학에 간다면 우리 식구는 어떻게 살겠느냐?”

   

권성업 포교사 수필집, "선지식을 찾아서"

 

새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렇다. 나는 오직 앞만 보고 뛰었을 뿐,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이 집안의 장자요 기둥이다.
비록 조부님과 어머님이 계신들
가난한 농촌에서 어찌 감당하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질곡(桎梏) 앞에
하늘땅이 무너지고 앞길은 캄캄하였다.

비록 진학은 포기했을망정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희망의 열의만은 식지 않았다. 하루는 시장에서 사서(四書)의 하나인 ‘맹자(孟子)’를 사들고, 같은 마을에 사는 80여세가 넘으신 한학자 몽로(夢老) 이치화(李致和) 선생을 찾아갔다. 그는 지금같이 개화된 세상에 한문을 배우고자하는 제자를 만났다고 무척 반기셨다.

숨이 찬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통고금 달사리(通古今 達事理) 역사를 알아야 이치에 통달한다’고 하시며, ‘맹자’를 끝마친 다음, 중국 역사에다 우리 역사의 주요연대를 조금 내비친 ‘사략(史略)’이란 책을 권해 주셨다. 이를 통해 한문의 문리(文理)를 터득, 다른 책들도 스스로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四書)를 혼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때의 배움으로 한의학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었고, 지방4급 공무원 고시 합격, 중학교 한문과 준교사 검정고시 합격, 한약업사 고시 합격 등 다양한 진로의 문도 활짝 열렸다. 공무원 12년, 교직 10년 , 한약업 18년 등 40년 역사가 이때 배움에 있었음은 하늘이 내게 내린 은혜인 동시에 막중한 소명이었으리라.

내가 서당에 다닐 때 꿈은 나라의 명재상(名宰相)이 되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고, 고3에 들면서는 명의(名醫)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한문을 배우면서 한의학(韓醫學)에 눈을 떴다.

공무원 말기에는 불경(佛經)을 만나 번뇌망상으로 황폐화된 정신과 육체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다시 태어나는 무한영광의 기쁨을 맛보았다.

불법(佛法)으로 인해 마음에 대한 자각과 눈이 열림으로서 환자를 만나 그의 육체에 숨어있는 병의 정보를 기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나름대로 포착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예상치 못한 큰 소득이요, 행운이며, 또한 소명(召命)이라 생각된다. 이런 보배를 얻도록 깨우쳐주신 선지식이나 선각자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 금할 수 없다.

오늘도 후세에 빛이 되고자 불제자의 길을 걷고 있다. _()_

(2001. 8)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가려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까?

‘합격하게 해주세요’ 하고
열심히 절하는 게 기도가 아니고,

대학시험에 합격하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게 기도입니다.

내가 대학에 붙으려면
남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부처님이 무슨 심보로
남의 복을 빼앗아 나에게 주겠습니까?

그런 못된 짓을 하는 존재가
어떻게 우리에게 신앙의 대상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일어나지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행수나 바라고 도박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이 있을 리 없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합니다.

- 법륜 스님의 희망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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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선생님~ 선생님이 바로 선지식입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2014-07-12 17: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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