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시장통에는 내 또래 동네 꼬마들이 꽤 여럿 있었다. 우리는 주로 자치기, 구슬치기, 술래잡기, 딱지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
용돈이 생기면 중국 할아버지가 하시던 만두가게에 가거나, 여름에는 대성당에 아이스케키를 사먹으러 뻔질나게 다녔다.
만두가게나 대성당에 가면 주인아저씨들이 나를 서울약국 큰아들로 부르셨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아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드니까 편하게 그냥 서울약국 큰아들로 부르신 것 같다.
가끔 야채가게나 우씨 아저씨네 고기 집엘 가거나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가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나를 서울약국 큰아들로 불러 주셨다. 대성당 옆에 이발소가 있었는데, 이발소 아저씨도 나를 서울약국 큰아들로 부르셨다.
요즘에는 아이들 전용 작은 자전거가 있지만 그 때는 동네 아이들 모두 어른 자전거를 개다리로 탔다. 그 무렵 개다리로 자전거 타는 게 우리들 사이에서는 유행했다. 개다리 자전거를 못타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
나도 약국에 있던 상열이 아재를 졸라서 개다리 자전거를 배웠다. 아재가 잡아주면 개다리를 끼고 자전거를 타서 밀어주면 앞으로 나가는 연습을 한동안 해서야 겨우 앞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게 되었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게 되자 신이 나서 비틀대면서도 자전거로 시장통을 누볐다.
그러던 어느날 시장통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갑자기 동네 꼬마 하나가 앞에 나타나서 얼떨결에 피하다가 대성당 앞 사거리에 있던 생선가게(평화상회, 지금의 해주청과 자리)로 돌진해 들어갔다. 가게 앞에 생선 궤짝을 주욱 늘어놨는데, 그 위로 보기 좋게 자전거와 같이 엎어졌다. 생선 위에 엎어져서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보다. 코를 찌르는 생선 비린내와 “왠 놈이 남의 생선에 엎어졌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통에 정신이 나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어물전 아저씨가 도깨비 같은 눈에 잡아먹을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셨다.
화가 많이 난 아저씨는 나보고 생선을 버렸으니 다 사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어린 나이에 놀라기도 하고 돌발 상황에 당황하기도 해서 무작정 막 울었다.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안에서 나와 나를 보시더니 서울약국 큰아들 아니냐고 하셨다. 가끔 심부름으로 생선을 사러 오면 반가이 맞아주시던 아주머니였다. 나는 반가움에 더 크게 울었다.
아주머니가 약국으로 연락을 하였나보다. 잠시 뒤에 어머니가 오시더니 다친 데 없냐고 물으시며 내 옷에 낚시 바늘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하나 하나 떼어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생선을 주로 낚시로 잡았는지 내 옷에서 낚시 바늘이 열 개도 더 나왔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에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드리고 나서 내 손을 잡고 집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울먹이며 어머니께 생선가게 아저씨가 여기 있는 생선 다 사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어지러진 생선박스와 뒤범벅이 된 생선들을 보고 생선을 두 박스나 사셨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아버지는 그 얘기를 듣고 배꼽을 잡고 웃으셨고, 우리 식구는 조려 먹고, 튀겨 먹고, 찌개도 해먹으며 한 동안 생선파티를 했다.
그로부터 한 동안 서울약국 큰아들의 개다리 자전거 사건 이야기가 골목을 누볐다. 그 후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나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개구쟁이였던 서울약국 큰아들 이야기가 골목에서 왁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나를 있게 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내주는 저분들의 응원과 기도로 하여 말썽쟁이 소년이 의욕이 넘치는 건강한 청년으로 자랐을 것이다. 어른들이 불러주는 애정 어린 말들로 하여 소년이 건강하게 자라듯 지금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싶다.
◇김영호 수필가의 시, '따뜻한 손'을 낭송하다◇
>> 따^듯^한~ 손 <<
희고 갸름한 손이 아니라
건강한 농부의 두툼한 손 같은
화사한 반지 찬 여린 손이 아니라
밭에서 돌아 와 방금 흙 털어낸
마디 굵은 어머니의 손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에 공들여 온 손
사람을 키우는 밭에 지혜의 씨앗을 심는 손
산처럼 듬직한 아버지의 손,
어린 아기 배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처럼
따듯한 굳은 살 박힌 의사의 손,
여기함께 손잡고 함께 등 두드리며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기의 환한 웃음을 향해
정직하게 사는 어려운 이웃의 시린 등을 향해
홀로 지내시는 어른들의 따듯한 저녁을 향해
꿈을 키우는 어린 학생들의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향해
취업의 전쟁을 치르는우리 대학생들의 절실한 눈빛을 향해
노동의 땀방울로 하루를 재우는노동자들의 고단한 어깨를 향해
고난의 행군을 펼치는 중소기업 사장님들과근로자들의 꿈과 도전을 향해
창작의 열정으로 어둠을 씻는 문화예술인들을 향해
힘겹게 하루를 끌며 돌아오는 가장의 희망을 향해
자식 걱정으로 애를 태우시는어머니들의 기도하는 손끝을 향해
손 내밀 곳 없는가난한 농부와 노동자의 거친 손을 향해
다정하게 손 내밀어 맞잡고소박하게 어울린 꽃밭같은
우리들의 세상을 향해 가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