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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치며 우리는 ‘해야’를 불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내 진로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나 좋은 일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운동을 계속하면 내가 사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항상 생활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아버지가 원망스럽던 시절이었다. 나는 운동을 접고 고등학교를 나오면 취업이 가능한 증평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당시 건설 경기가 좋았던 때이므로 가장 취업률이 높은 건축과를 지망했다.
나를 비롯해서 증평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입장이 비슷했다.
집안 형편이 좋으면 대학 진학 할 수 있는 성적의 소유자들이었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증평공고로 진학을 한 것이었다.
취업을 희망해서 고교 진학을 했으나 마음 한켠에 버릴 수 없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담임선생님은 기타 반주를 해주셨다.
우리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마그마의 ‘해야’였다.
당시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곡으로 청록파 시인인 박두진의 ‘해’라는 시에 곡을 붙이고 일부개사를 한 것이었는 데 그 노래를 부르면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우리는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희망했던 그 무엇이었으며 억눌렸던 감정이었다. 노래를 부른 그룹사운드의 이름이 ‘마그마’라서 그랬는지 우리에게는 더욱 폭발적이었다.
특히 어릴 적부터 태양을 좋아했던 내게 그 노래는 내 안의 어두움을 모조리 내쫓는 외침과도 같았다.
선생님은 기타를 교실에다 늘 두셨는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독학으로 기타연주를 익혔던 나는 선생님을 대신해서 반주를 했고 반 친구들은 내 반주에 맞춰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좋아하고 잘해서 가수의 꿈을 오랫동안 간직했던 나는 지금도 곁에 기타를 두고 수시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
당시는 국토개발이 많이 이뤄지던 시절이라 건축과는 나오기만 하면 취직이 보장이 됐다. 고졸학력이지만 국가기관이나 건축회사 등 좋은 일자리를 골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건축과에 들어갔는데 등록금 외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았다.
특성상 실습이 많았는데 자재와 재료 구입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어머니는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 말하라고 했지만, 고생하며 살림을 꾸려나가시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재료 구입을 못해서 수업시간에 곤란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2학년 때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는 수학여행비가 없었다. 담임선생님에게 사정을 말하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한 학생은 나를 포함해 전 학년에 두 명이 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지만 나는 주변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학교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난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자퇴를 결심했다.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나 역시 학교를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검정고시나 다른 방법을 통해 학업을 계속 하겠다고 어머니와 굳게 약속을 하고 학교를 그만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는 아들을 봐야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
나의 중퇴를 가슴 아파한 분은 어머니 말고 또 있었다. 담임선생님이셨다. 형편상 그만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를 하시면서도 나중에라도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허락을 하겠노라 하셨다.
그러면서 어린나이에 가족을 위해 희생할 생각을 한 것이 기특하다며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또 하셨다. 그때 한 선생님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나는 30년이 지나서 지키게 되었다.
가구 공장에 취직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나는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집에서 가까운 청주에서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가면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생각이었지만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수 오디션을 여러 차례 보러 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른 가수 지망생들처럼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서울에서 처음 일하게 된 곳은 가구공장이었다. 몸을 의탁 할 수 있는 친척이 있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신세를 지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 힘으로 살아보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는 결정까지 했는데 시작부터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 하는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열심히 일을 했다. 내가 쓸 최소한의 돈만 남긴 채 월급의 대부분을 집으로 보냈다.
저축은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잘 될 거라는 믿음과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향인 서울에서의 생활을 힘들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집으로 보낸 월급은 대부분 생활비와 여동생 학비로 쓰였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여동생에게는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었다.
다행이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취직해서 집안을 돕는데 일조를 했다. 가구공장에서 4년을 일했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어떻게 해야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했던 시기였다.
특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라는 가르침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과연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있다면 그 때가 언제가 될 것인가, 대체 어느 정도가 돼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 등등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돈이 없다면 몸으로,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음이라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때는 내 앞길을 헤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터라 다른 사람을 돕는데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말씀이 늘 귓전에 맴돌아 고통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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