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6일 괴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충북교육발전소 김병우 대표 초청강연회 영상/ 느티나무통신 김의열 기자가 찍다. 

1.‘명마(名馬)’가  고삐에 상한다.

‘배울 학(學)’자는 상형자다.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 찬찬히 글자를 뜯어보면 아이(子)가 책상(冖) 앞에 앉아 두 손(臼)으로 무언가 배울 것(爻)을 펴들고 공부하는 모습이 비친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지 이미 수천 년. 그 때도 배움은 그렇게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책상 앞에 뭔가를 붙들고 앉아 익히는 형태로…. 그래서 ‘배울 학(學)’자는 공부의 기본자세를 담고 있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공부하는 자리와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처럼 책상에 앉아 배울 것을 붙잡고 우직하게 파고드는 것이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면학의 기본자세’일 듯싶기도 하다.

요즘도 많은 학부모나 교육 관계자들이 그런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학생들을 최대한 책상 앞에 붙들어 두고, 오직 책을 파도록 하는 것이 ‘공부의 왕도’라는 것. 그러지 않고는 불안해 배기지를 못한다. 그래야 부모는 자녀들이 공부를 하는 듯해 마음이 놓이고, 교사도 책임을 다한 듯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배움의 방식과 형태가 그 글자(學)를 만든 원시시대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부에 대한 이 고전적 포즈는 언제까지나 면학의 기본자세로 모셔져야 하는 것일까. 건듯하면 ‘지식·정보화 사회’요 ‘문화의 시대’라는 21세기에도, 이것은 여전히 유효한 본보기일까.

그래서 교육 관련자나 학부모들부터 먼저,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로 들면서 당장 학력의 개념부터 바뀌고 있다. 배운 것을 얼마나 외워 쓸 줄 아느냐가 종래의 잣대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힘이 ‘진정한 학력’인 시대가 되었다. 산업화 사회가 기억력・이해력・적용력이 필요한 사회였다면, 지식정보화 사회는 사고력・탐구력・창의력・상상력 등 ‘자기 주도 학습력’을 요구하는 사회다. 그것이 석학들의 한결같은 예측들이다.

그런 능력들은 책상 앞이나 책 속에서만 찾아지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이뤄지는 모든 현장이 배움의 장이고, 인터넷・TV 등 모든 매체들이 교과서가 되는 시대로 들고 있다. 그래서 이젠 학생들을 더 이상 책상 앞에만 묶어두려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은 아이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고 마는 길이다.

광야를 달릴 말을 고삐로 묶어두면 어떻게 될까. 그 고삐에 매이고 만다. 우리 속담에도 ‘명마(名馬)가 고삐에 상한다.’는 말이 있다. 고삐에 매인 말은 처음에는 벗어나려고도 해 보지만, 이내 좌절과 체념, 무력감에 길들여지고 만다. 그 말에게 더 이상 광야는 없다. 고삐를 풀어주어도 그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세계무대의 주역이 되라면서 책상 앞에만 묶어두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라면서 밤늦도록 학교에만 붙들어두는 ‘눈먼 교육열’의 고삐를 끊지 않은 채, 우리 아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어른들의 ‘공부에 대한 공부’부터 다시 필요한 이유다.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는 증평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범과 관련해 해직되었다. 김병우 상임대표는 당시 분위기를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를 떠나는 날, 학생들이 모두 복도에 나와 ‘아침이슬’만 하염없이 부르며 울어 그야말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결국, 종업식도 못하고 여름방학을 맞았고, 저는 여름방학 덕분에 개학 하루 전날 해직되었습니다. 이후 학생들은 편지를 보내고, 소풍 가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 전교조 사무실을 찾곤 했습니다. 제가 도 교육감 선거에 나갔을 때, 그때 학생들이 어엿한 학부모가 되어 전화홍보 등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병우 대표 좌우명은 진광불휘(眞光不輝) 진수무향(眞水無香) - 좋은 빛은 반짝이지 않고, 참된 물은 향이 없다.

 2.누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는데 ...

한자의 '가르칠 교(敎)’자는 爻(算가지~매듭)+子(아이)+攵(치다)로 짜여있다. 공부할 거리(爻)를 앞에 두고 있는 아이(子)에게 매를 드는(攵) 모습.

가르침에 웬 회초리일까. 얼핏, 짐승을 훈련시킬 때 쓰는 채찍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짐승을 훈련시키는 데도 채찍만이 능사는 아니다. 짐승이 좋아하는 먹이(당근책)도 쓴다. 하물며 사람에게 하는 ‘가르침’에 매질이라니.

유교의 교육관이 담긴 ‘명심보감’에도 “귀여운 아이 매 한대 더 대고, 미운 아이 떡 한개 더 준다.”는 말이 나온다(訓子편). ‘교편(敎鞭)을 잡는다.’는 일본식 표현(관용구)에도 회초리(鞭)가 상징처럼 들어있다. 뿐이랴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영국속담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교육은 ‘할 일’과 ‘말 일’을 가릴 줄 알게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칭찬은 할일을 격려하고 꾸중은 말일을 경계하는 기제가 된다. 칭찬으로 긍정적 자아를 기르고 꾸중으로 절제를 배운다. '한비자'가 상과 벌의 적절한 구사(信賞必罰)를 중시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교육심리학 차원에서 정리해낸 것이 스키너의 강화이론이다. 스키너는 상(賞)은 ‘할 일’을 진작하는 정(正)적 강화물이요, 벌(罰)은 ‘말 일’을 경계하는 부(負)적 강화물이라 했다.

그러면, 둘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 그것도 짚어본 연구가 있다. 그에 따르면, 칭찬과 꾸중에 반응하는 뇌의 활성 정도가 나이에 따라 달라서 10살을 경계로 그 아래로는 칭찬이, 위로는 꾸중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이든 벌이든 자연스러운 성장에 오히려 해롭다는 관점도 있다. 그것을 처음 거론한 것이 루소의 <에밀>이다. 그리고 그것을 교육활동에서 실제로 적용해 본 것은 유아학교의 창시자 로버트 오웬이다. 그리고 지금 덴마크에서는 상조차도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크다 하여 시상제도 자체가 없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체벌의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수준을 맴돌고 있다. 예로부터 따끔한 회초리는 ‘사랑의 매’요 교육적 열성의 발로로 여겨왔다. 필자도 적절한 체벌은 교육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한창 교육적 열정에 불타던 초임시절, 툭하면 군에서 익혀온 ‘빠따’와 ‘얼차려’를 제자들에게 일삼곤 했었다!

요즘 발달심리학자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었다. 그들은 “사랑의 매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체벌은 신체적・심리적 충격과 상처만을 남기는 폭력일 뿐이라는 것이다. 굳이 약이라면 ‘독약’이요 ‘극약’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를 든다면 필히 그로인한 트라우마를 기억하라”고 다짐을 둔다.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을 보고 흠칫한 책이 있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차마 내용을 들추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한때 ‘열성교사’임을 자처하면서 아이들에게 눈 부라리며 휘둘렀던 봉걸레 자루와 손찌검들이 떠오르면서, 그 트라우마를 지금도 안고 살 제자들의 눈총이 따가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www.boknews.com